뽀라닷컴
Loading...




육아,교육,학습 정보>>

초기설정 초기설정 목록형 목록형 웹진형 웹진형 앨범형 앨범형 블로그형 블로그

전체(267)육아정보 (112) | 육아자료 (66) | 건강정보 (46) | 임신,출산 (27) | 기타정보 (16) |
학교에서 쫓겨 났던 과학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009-04-23 21:30:20
홈페이지홈페이지

1955년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은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천재, 사망하다.”라는 머릿기사를 내보냈다.
아무렇게나 휘날리는 백발 속에 감추어진 그의 천재적인 과학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의 힘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정신 세계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의 부모나 선생님 가운데, 그가 과학 천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진행/김지현 기자

디자인/이진아

 사진/교원 포토라이브러리

 

아인슈타인(1879~1955)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울름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 그의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었지만, 아들에게는정식 독일 이름을 지어 주었지. 그는 1905년 스위스 국립 특허 사무소에서 일할 때 한 편의 논문을 제출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 이론’이란다. 이것은 당시 과학을 지배했던 뉴턴의 이론을 뒤엎는 것으로, ‘인간 사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게 돼. 1916년에는 이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그의 이론은 블랙홀과 우주의 움직임에서부터 핵무기, 원자력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놀라운 발견을 이뤄냈어.
 


 
 
뭐든지 느린 아이
아인슈타인의 어머니, 파울리네는 어린 아인슈타인을 보면 걱정이 앞섰다. 처음 말을 배울 때도 힘겹게 배우더니, 말을 할 때도 한참을 뜸들였다가 입을 여는 것이었다. 생각을 할 때도, 배우는 것도 뭐든지 느릿느릿. 파울리네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혹시 저능아가 아닌지, 말을 영영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염려가 되었다.
흔히 위대한 과학자의 어린 시절에 나올 법한 애칭인 ‘천재 소년’, ‘타고난 영재’라는 수식어는 아인슈타인과 거리가 멀었다. 가족이나 선생님의 눈에 그는 ‘한 박자 늦은 아이’ 아니면 ‘머리가 조금 큰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생각이 깊고, 끈질기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학교 수업 시간에는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고, 계산력도 뛰어나지 못했으므로, 수학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선생님들이 아인슈타인을 ‘평범한 아이’로 판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넌 결코 쓸모 있는 인물이 될 수 없을 거다”
대학 예비학교인 루이스폴트 김나지움은 당시 독일에서 꽤 유명한 학교로 이름 나 있었다. 이 학교 학생이었던 아인슈타인은 그의 나이 17세 때, 학교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김나지움의 엄격하고, 획일화된 수업 방식에 아인슈타인은 항상 거부감을 가졌다. 그가 결정적으로 자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그리스어를 가르쳤던 담임 선생님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아인슈타인이 제출한 숙제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더 이상 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인슈타인에게 ‘장래에 쓸모 있는 인물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100% 빗나간 예언을 하고 말았다.

 

돌아오지 않는 답장, 인정 받지 못한 논문 
“자네는 아주 영리한 청년이야. 하지만 커다란 단점이 있어.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아.”
스위스 연방 공과 대학의 베버 교수는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눈에 베버 교수는 새로운 물리학 연구를 무시하고, 고리타분한 강의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졸업 후 아인슈타인은 학교에서 연구를 계속 하고 싶었으나, 베버 교수와의 사이가 틀어져 학교에 남아 있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교수들도 그에게 조교 자리 하나 만들어 주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일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다른 대학으로도 보냈지만, 교수들은 답장을 주지 않았다. 일 년 후, 그는 임시 교사로 있으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을 과학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논문을 취리히 대학으로 보냈지만 박사 학위는 얻지 못했다. 결국 친구였던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립 특허 사무국의 기술자로 채용되었다. 졸업 후 2년 만의 일이었다.

뉴턴 이래 최고의 과학자라고 불리는 아인슈타인은 언뜻 보기에 평범하고, 때로는 보통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학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학교 수업은 과감히 박차고 나올 정도로 학문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으며, 진지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학문 세계를 넓혔던 진정 똑똑한 사람이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은 모든 관측자에 대하여 빛이 일정한 속력으로 진행한다는 광속도 불변의 원리와 ‘자연 법칙은 일정한 상대 속도를 가지는 모든 관측자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 형식을 가진다.’는 상대성 원리를 기본으로 내세운 이론으로, 뉴턴 물리학의 전제였던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하였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광선이 직선이 아닌 곡선 여행을 한다는 내용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다.


 





    



목록보기 삭제하기
이전글 미리보기남자바지 여자바지로 변신.   2009-07-06 0 4749
다음글 미리보기생활계획표 - 캐캐체   2009-04-07 0 7181